Would You Run a Race that will Not Bring Rewards?

Would You Run a Race that will Not Bring Rewards?
Would You Run a Race that will Not Bring Rewards?
2 Sam 18:19-33

The race of the Cushite and Ahimaaz tells us the two types of lives we have lived and the two ways of faith. It is because Apostle Paul once compared the processes of our lives and faith to a “race” (1Cor 9:24). However, what is important is the fact that not every participant receives an award just because they ran the race. It is stated that only one person will receive an award. Today’s Scripture text clearly tells us about a race that gets awarded and a race that cannot be awarded. Through these two races, I sincerely hope all of you will realize and run the race that receives an award.

I. Ahimaaz was only focused on running fast
Ahimaaz, the son of Zadok the priest, had earlier done a good deed to save David from danger by advising him of Hushai’s strategy while King David was on the run from Absalom (2Sam 17:17). Ahimaaz is now begging General Joab to make him in charge of telling the news of the war. However, because Joab knew where David’s heart stood on Absalom, he persuaded Ahimaaz because such news will not be awarded. However, Ahimaaz insisted and persuaded Joab, ran through a shortcut and stood before King David only to be reproached because the message he delivered was not what the king wanted. What is the problem with Ahimaaz? The Word of our living God and His message need to be active and alive in our hearts, but there are many people who do not care about the content but only care about running fast. Those who pursue their reputation, self-interest, and self-determination like Ahimaaz, must repent completely through today’s message. We live in the so-called speed era. This is an era that we focus only on speed without even realizing it. This generation is full of greed to reach faster than others and to achieve before others. However, God values content more than the length of time. Isn’t an assessment of a person determined not by the length of time he pursued but by its content? (1Cor 3:12-15) The Cushite was a person who pursued with a message although he was late. However, Ahimaaz has become a shameful runner who deceived his superior, a liar and a man who was not able to correctly deliver a message even though he had speed.

II. Ahimaaz ran for his reputation and his benefit
The Cushite was a man who faithfully obeyed the command of General Joab. However, Ahimaaz only ran for his reputation, his benefit, and for his glory. The world, like Ahimaaz, is the selfish world that no one else knows but him. However, the God above is the One who inspects all men (2Chr 16:9). It is useless to regret when you are in your own world thinking no one is watching, and then suddenly realize you are naked. The saints must always be enrobed with Jesus Christ to cover their shameful nakedness (Rev 3:18). There are so many people who believe in Jesus but not enrobed with the precious blood of Jesus Christ but enrobed with the garment of their “own thoughts and mind” instead and live while ignoring the decrees and laws of God as they please. To this, the parable of wedding banquet that appears in Mt 22:1-14 teaches us many lessons. A reality of a wedding guest being kicked out because he did not wear wedding clothes! If we were invited to Jesus’ wedding banquet, we certainly need to have a garment of redemptive blood. Nevertheless, this rude person who does not have his wedding clothes is a man who lives according to his own interests and standards. Such people are those who “look out for their own interests, and not those of Jesus Christ” (Php 2:21). Ahimaaz was an example of such people. He pursued his glory, joy and satisfaction, not realizing his bare shame.

III. Ahimaaz did not think of the painful things ahead but pursued only for his joy
How sad would a father feel if his son had died? If a messenger to deliver the news to the king did not intend to shoulder the sad reality that has unfolded before his eyes but only thought of his own joy, he would be reproached like Ahimaaz. We can compare Apostle Paul and Emperor Nero who lived contemporaneously during the 1st century. Paul died tragically while longing for Jesus. Emperor Nero was a man who had joy, pleasure, and all glory of this land that no one can imagine. Emperor Nero pursued for his joy and ultimately found disappointment. On the contrary, Apostle Paul found victory through suffering, sadness, and agony. Emperor Nero was a man who experienced failure through pleasure. Later, Paul left a great legacy of Christian Theology, but what did Emperor Nero leave behind? Didn’t he leave only darkness, destruction, sorrow and death to his family and country? The true joy and glory are waiting only for those who overcame the cross of agony. We must realize that true victory and joy will only be given to those who pursue and long for the cross like Jesus.

Conclusion:
My beloved saints! Is your race a shameful one like Ahimaaz? Or is it a commendable race with clear content like the Cushite’s race? Rather than running the race fast, I sincerely hope that all of you will pursue with clear message or with the Word of the living God that is active and alive in your hearts so that you will be able to introduce and testify the gospel of salvation of Jesus Christ of the cross appropriately to anyone.

상을 받지 못하는 달음질을 하려느냐?
삼하 18:19-33

구스 사람과 아히마아스, 두 경주자의 달음질은 우리 인생이 살아온 삶의 두 유형이고, 두 가지 신앙의 방식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일찌기 사도 바울은 우리의 인생과 신앙의 과정을 ‘달음질’(고전 9:24)로 비유하여 말씀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상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라고 말씀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상을 받는 달음질과 그렇지 못한 달음질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의 달음질을 통해 깨달아서, 상을 받는 달음질을 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아히마아스는 빨리 달리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제사장 사독의 아들인 아히마아스는, 일찌기 다윗왕이 압살롬으로 인해 피난 가는 중에, 후새의 모략을 전하여 위기에서 구하는 좋은 일을 했었습니다(삼하 17:17). 그런 아히마아스가 이제 요압 장군에게 부탁하여 전쟁의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맡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압은 압살롬에 대한 다윗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결코 상을 받을 수 없는 소식이라며 말렸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히마아스는 요압을 설득하여 지름길로 달려가서, 다윗왕 앞에 서긴 섰으나 왕이 원하는 메시지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책망만 받고 말았습니다.
아히마아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우리 마음속에는 늘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메시지가 살아 움직여야 할 텐데, 오직 빨리 달리는 데만 신경 쓰고 내용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히마아스와 같이 자기의 명예, 자기 욕심, 자기 의지를 가지고 달려가는 사람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 철두철미하게 회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소위 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속도에만 관심을 쏟는 시대입니다. 남보다 빨리 가고, 남보다 먼저 성취해야 되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세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시간의 길이보다 그 내용을 보십니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그가 달려온 시간의 길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까?(고전 3:12-15)
구스 사람은 발걸음은 늦었지만 메시지는 가지고 달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스피드는 있었으나 메시지를 바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 상관을 속이고 거짓말하는 부끄러운 경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아히마아스는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위한 달음질을 하였습니다.
구스 사람은 요압 장군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히마아스는 자기의 명예와 이익과 영달을 위해 달음질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은 아히마아스와 같이, 자기만이 알고 남은 다 모르는 줄 압니다. 하지만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다 감찰하고 계시는 분입니다(대하 16:9). 아무도 보지 않는 줄 알고 자기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벌거벗은 것이 드러나게 될 때 후회해 봤자 소용없습니다. 성도들은 늘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가려야만 합니다(계 3:18).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옷을 입지 않고 ‘자기 옷’, ‘자기 생각의 옷’을 입고 마음대로 율례와 법도를 무시하면서 사는 자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 마 22:1-14의 혼인 잔치의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주고 있습니다. 결혼 잔치에 초대받아 참석은 했으나 예복을 입지 않아서 쫓겨나고 마는 현실! 예수님의 혼인 잔치에 참여하였으면 당연히 구속 받은 피의 옷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예복을 갖추지 않은 이 무례한 사람은 자기 멋대로, 자기 본위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는 자”(빌 2:21) 입니다. 바로 아히마아스가 그러한 자였던 것입니다. 자기의 영광과 자기의 기쁨과 만족, 스스로 벌거벗은 부끄러움은 모르고 달려간 사람입니다.

3. 아히마아스는 앞에 있는 고통스러운 일은 생각지 않고, 자기 기쁨만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아들이 죽었다면 그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왕에게 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서 눈앞에 벌어진 슬픈 현실을 짊어지고자 하는 자세는 없고 그 와중에 자기의 기쁨만 생각한다면, 아히마아스와 같이 책망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같은 1세기의 인물인 사도 바울과 네로 황제를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바라보다가 처참하게 죽었습니다. 네로 황제는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이 땅의 모든 기쁨과 쾌락, 모든 영광을 다 받은 사람입니다. 네로 황제는 자기의 기쁨을 바라보고 달려와, 결국 실망을 발견했습니다. 반면에 사도 바울은 괴로움과 슬픔과 아픔을 뚫고 승리를 찾은 사람입니다. 네로 황제는 쾌락을 거쳐 실패를 맛본 사람입니다.
후에 바울은 기독교 신학이란 위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네로 황제는 무엇을 남겼습니까? 흑암과 파괴, 자기 가문과 조국에 슬픔과 죽음만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고통의 십자가를 넘은 자에게만 참기쁨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다운 승리와 기쁨은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바라보고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겠습니다.

결론:
성도 여러분, 나의 경주는 아히마아스와 같은 부끄러운 경주입니까? 아니면 구스 사람처럼 분명한 내용을 가지고 칭찬받는 경주입니까? 빨리 달리는 것보다, 우리 마음속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 즉 분명한 메시지를 가지고 달음질함으로써, 누구한테도 적절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소개하고 증거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