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n. Come, Lord Jesus.
Since the first coming of the Lord, the Christian Church has been praying “Come, Lord Jesus,”
with a yearning heart for the Lord who is to come again. However, the incarnated Jesus who
came and gone 2,000 years ago is working within the believers and is with us as a ‘personal
God.’ Faith that awaits the Lord is the faith that share the sorrow and joy with the Lord with the
personality of the Lord. The Lord has already come to those saints, be with them and hold onto
them. The grace of the Lord Jesus is already with them.
I. Like the vultures will gather wherever there is a carcass, Christ comes where life arouses.
We can compare our faith with a story of a tree frog. It is because we have always lived contrary
to the Word of God like a tree frog. The ultimate end for such people is the grave. In order to
abolish the grave and give the world of eternal life, happiness and joy to all mankind, Jesus came
to this earth as truth and grace, carrying the grave. The Apostle Paul referred to Jerusalem as our
mother (Gal 4:26), and God is our Father. Although we the saints who have such parents should
become a brother to our neighbors and live harmoniously with one another, but we are acting just
opposite like a tree frog. How can we sing, “But at the cross of Calvary sings, ‘Praise God for
lifted loads!’” (Hymn 455)? We must live isolated from this generation and yearn for the Lord’s
second coming, yet we do everything opposite. Even a ‘broken mirror’ sparkles when the sun
shines on it. No matter how corrupt and broken our conscience may be, it will glow and transmit
light into the world when we receive the Word. Jesus said to Peter who claimed to believe in the
Lord but failed to dwell in the light, “Satan has asked to sift all of you as wheat” (Lk 22:31), and
He said to the 70 disciples who returned with joy for driving out demons, “Do not rejoice that
the spirits submit to you, but rejoice that your names are written in heaven” (Lk 10:20). The
saints who long for the Lord’s second coming must now abandon the faith of a tree frog but bear
the fruit of life. It is because like how the vultures will gather wherever there is a carcass, (Mt
24:28), the Lord only comes where life arouses.
II. Christ comes to those who are awake and sober.
The Apostle Paul encouraged the saints to be spiritually awake and sober (1Thes 5:6). People in
the world are filled with envy and cannot stand the success of others, so they try to trample on
them at all costs. Such jealousy of the flesh is a shortcut to ruin both ourselves and others. They
only look for others’ weaknesses and devise ways to ruin them at all costs. Such person is
already spiritually dead. They only believe in Jesus vertically, but they are cut off horizontally.
They may greet each other outwardly, but their hearts are closed. That is why the Apostle Paul
encouraged us to be awake and sober. Jesus also said to Peter, “Satan has asked to sift all of you
as wheat. But I have prayed for you, Simon, that your faith may not fail” (Lk 22:31-32). What a
frightening Word is this? Without the power of the Lord’s love and his intercession, we are all
bound to be swallowed up by Satan. Hence, those who are always awake and abide in the Lord
can walk with the Lord and be victorious in the Lord who is already present in our lives.
III. Christ comes to those who dwell under the cross.
Not only God has already sent the cross where sin is and forgave our sins, but He also sustained
us so that we can stand tall on our feet through the merits of the cross. First, the shade of the
cross fell on the Garden of Eden. The very place that sin and death came as a result of Adam and
Eve’s disobedience, is a place where the shadow of the invisible cross is cast. When God cursed
the serpent in the Garden of Eden, the shadow of the cross was present as He promised the seed
of the woman (Gen 3:15). Just as one trespass resulted in condemnation for all people, one
righteous act resulted in justification and life for all people (Rom 5:18). Second, we discover the
shadow of the cross through sacrifice. Through Abel’s sacrifice of faith or Noah’s ark, we come
to realize the shadow of the invisible cross. Moreover, because God sacrificed His Son, Jesus
Christ for mankind like Abraham sacrificed Isaac on a mountain in the region of Moriah, we
come to realize the cross of Christ that is already present through sacrifice. Third, God allowed
the shadow of the cross in the wilderness. During the time of the Exodus, God showed the work
of the cross from the statute of the Passover and the Lamb. That is why Jesus came as the
Passover Lamb to take our sins upon Himself. When the chosen people of Israel left Egypt and
wandered in the wilderness, God called them the ‘assembly in the wilderness’ and nurtured them
by providing manna, quail, and living water. Moreover, when they were dying from the
venomous snake, God commanded Moses to make a bronze snake; and whoever looked at it
lived. Like the curtain of the holy place, the Lord has covered all our sins and transgressions. All
these testimonies are a proof that the grace of the cross is already protecting the saints in the
wilderness as a shadow (Jn 3:14).
Conclusion
Like a rag-picker who uses tongs to pick a rag, Jesus uses tongs of the cross to pick
us up and save us saying, “You are mine.” He cleansed us in the blood of the cross and declared,
“You have no sin. You are the son of God.” We, the saints who live in such grace, are those who
already pray, “Amen. Come, Lord Jesus” and the blessed ones that the Lord is already present
and dwell with us.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님 오신 이후 기독교회는 다시 오시는 주님을 소망하는 믿음으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2천 년 전에 육신을 입고 왔다 가신 예수님은 믿는 자 속에 역사하셔서 ‘인격의 신’으로 함께하십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은 곧 주님의 인격으로, 주님과 동고동락하는 신앙입니다. 그런 성도에게 주님은 이미 오셔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그들과 이미 함께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이듯, 생명이 약동하는 곳에 그리스도가 임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을 비유로 말하자면 청개구리 신앙과 같습니다. 청개구리처럼 늘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들의 결국은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무덤을 안고 온 인간들에게 무덤을 파괴하고 영생 복락의 세계를 주시기 위해 은혜와 진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을 가리켜 우리의 어머니라 했고(갈 4:26),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그러한 부모를 가진 우리 성도는 서로 형제가 되어 화목해야 할 텐데, 청개구리처럼 서로 불목하며 이웃 간에 등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찬송 455장)라고 찬양할 수 있습니까?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이 세대와 단절되어 살아가며, 모든 것을 반대로 행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깨진 거울’에도 햇빛이 비취면 반짝입니다. 아무리 우리의 양심이 무너지고 깨졌다 해도 말씀을 받을 때 반짝하고 빛이 나가 세상을 비춰야 합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빛에 거하지 못할 때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해 “사단이 너를 청구했다”(눅 22:31)라고 하셨으며, 70문도가 귀신을 쫓아낸 것에 기뻐할 때 “귀신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눅 10:20) 하셨습니다.
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는 이제 청개구리 신앙을 버리고 생명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듯(마 24:28), 주님은 오직 생명이 약동하는 곳에 임하시기 때문입니다.
2. 깨어 근신하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임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 근신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살전 5:6). 세상 사람들은 남이 잘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시기심에 어떻게 해서든지 밟고 올라가려 합니다. 이러한 육신의 시기는 자신과 남을 다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상대방의 약점만을 찾고 어떻게 해서든지 죽일 궁리만 합니다. 그러한 자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예수를 믿되 오직 수직적으로만 믿고 횡적으로는 단절된 상태입니다. 겉으로는 인사해도 마음과 마음이 닫혀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고 권면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베드로를 향해, “사단이 너를 청구하였으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눅22:31-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우리는 주님의 사랑과 중보기도의 힘이 아니면 다 사단에게 잡아먹힐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늘 깨어 주 안에 거하는 자가 이미 우리의 삶 속에 임재하신 주님과 동행하며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3. 십자가의 그늘에 거하는 자에게 그리스도께서 임하십니다.
하나님은 죄가 있는 곳에 이미 십자가를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셨을 뿐 아니라 십자가의 공로를 힘입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를 붙잡아 주셨습니다.
첫째, 에덴동산에 십자가의 그늘이 임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죄와 죽음이 온 그 자리는 곧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곳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저주를 명하셨을 때 십자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여인의 씨를 약속하셨습니다(창 3:15).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지만, 의의 한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습니다(롬 5:18).
둘째, 제사를 통해 십자가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됩니다. 아벨의 믿음의 제사나 노아의 방주를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십자가의 그림자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아브라함이 모리아의 한 산에서 이삭을 제물로 드렸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를 위해 제물로 드리셨으니 제사를 통해 이미 임재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셋째, 광야에서 십자가의 그림자를 허락하셨습니다. 출애굽 당시 유월절과 어린양의 규례에서 하나님은 십자가의 역사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셨습니다. 그 선민 이스라엘이 애굽을 나와 광야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은 이를 ‘광야교회’라 칭하시고 그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와 생수를 공급하여 양육하셨습니다. 또한, 불뱀에 물려 죽어갈 때 놋뱀을 만들게 하셔서, 이를 쳐다보는 자마다 살았습니다. 성소 휘장처럼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덮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증거는 이미 광야에서 십자가의 은혜가 그림자로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증거입니다(요 3:14).
결론
예수님은 마치 넝마주이처럼 십자가의 집게로 “너는 내 것이다” 말씀하시며 우리를 집어서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십자가의 피로 목욕까지 시켜 주시고, “너는 죄 없다.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선언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 속에 살아가는 우리 성도는 이미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기도하는 자이며, 이미 주께서 우리 속에 임재하여 함께 거하시는 복된 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