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se Who Encountered the Desert of Shur and Marah

Those Who Encountered the Desert of Shur and Marah
Those Who Encountered the Desert of Shur and Marah
Exo 15:22-26

As people live on this earth, they carry a variety of burdens, and it is annoying regardless of its weight. How many people out there who choose to commit suicide with self-blame as they become frustrated, agonized, anxious, and bitter? However, our Lord has invited those of us who are heavily burdened and oppressed and says “Come to me, all you who are weary and burdened.” The Desert of Shur and Marah show the current state of the mankind that struggle with heavy burdens. If you are carrying such burdens, I sincerely hope that you will be blessed to come forward to the Lord who is unloading our burdens through today’s message.

I. The sound of desolate “Desert of Shur” and bitter pain of “Marah.”
In Hebrew, the word “Shur” means a “hard rock,” and “Marah” means “bitter, painful toil.” The fact that the Israelites encountered Marah’s bitter waters in the Desert of Shur after Exodus symbolizes our lives’ path today as bitter waters of Marah and the desert. The Desert of Shur is a desert filled with dust. It is a hot place with no shade to avoid the sun. Marah denotes a bitter and painful reality of life. Those who are disease stricken make a painful groan due to their agony. It is a bitter pain and agony not to have wealth that you once had. Being terminated from a job at your prime years although you worked hard as a member of society, or not being able to make the desired career path after studying hard are agony like the Desert of Shur and the bitter waters of Marah. The glory, fame and the wealth of the world are the Desert of Shur and Marah. We realize that our social position and power are the bitter waters of Marah once we acquire them. The Israelites in today’s Scripture text arrived at the Desert of Shur after crossing the Red Sea, but they were not able to get water even though they wandered for 3 days. Then, they finally arrived in Marah and found water, but they were not able to drink it because of its bitterness. How did the Israelites react to that? The thrill and grace of crossing the Red Sea was short lived, and they turned into a disbeliever who blamed the man of God Moses and grumbled about their bitter suffering. At this time, Moses cried out to God. This is the image of a true saint as we face the Desert of Shur and Marah of our lives. We cannot avoid the bitter pain of Shur and Marah in our lives, but we can overcome them when we pray like Moses. To Moses who cried out to God about the bitter waters of Marah, God showed him a piece of wood. He provided him with a tool to resolve the problem. Just like how this “bitter water” became “sweet” when Moses threw this wood into the water, God is giving the wood of the Lord’s cross at this time to resolve our issues who are crying aloud to Him at Shur and Marah. Today, I sincerely hope through this message that there will be a work of this wood of grace and the wood of resolution be thrown into your Marah.

II. God is the One who heals our life’s pain of Shur and Marah.
What is God’s ultimate message to the Israelites in today’s Scripture text, the God who turned the bitter waters of Marah into sweet water? It is “I am the LORD who heals you.” What this means is that it is our God whom we believe that heals our afflictions and our problems which denote the pain of Shur and Marah. One cannot feel satisfaction, joy, happiness and reward anywhere in the world, but if he trusts and relies on the healing God and lives anywhere in the world, that place becomes a new Marah where sweet waters gush out and a new Shur which is a garden of God filled with green pasture. During the time of Prophet Elisha, the water flowing in Jericho was not suitable for agriculture which made the land unproductive. Didn’t all problems resolve when Prophet Elisha took the salt and threw it into the spring? (2Ki 2:19-22) Once you realize it, this salt also symbolizes Jesus Christ. Who played the role of true salt to prevent a rotting of the world? Wasn’t that Jesus Christ? Our Lord Jesus cleansed our noxious and corrupt lives with his precious blood of the cross. I sincerely hope that all of you will throw the salt of Christ at the center of your unproductive lives like the bitter waters of Marah. God will respond, “I have healed this water. Never again will it cause death or make the land unproductive” (2Ki 2:21). At the wedding banquet in Cana, Jesus performed a miracle to turn water into fine wine. As he performed this miracle, Jesus did not recite a special spell or showed gesture. Jesus only ordered the servants to fill the jars with water and draw some out and bring it to the master. However, how could plain water turn to wine? It was due to the obedience of the servants. They quietly obeyed when Jesus’ mother told them, “Do whatever he tells you” (Jn 2:5). Likewise, those who have encountered the bitter pain of Shur and Marah in their lives just need to quietly obey the Lord’s commands and fill their empty jars with water. No matter what disease we are afflicted with, the bitter waters of Marah will turn to sweet water and the Desert of Shur will turn to Canaan overflowing with joy, happiness and ecstasy when we obey the Lord’s command and throw the wood of the cross and the salt.

Conclusion:
Jesus took up our infirmities and bore our diseases (Mt 8:17). Hence, we have hope even if the pain of Shur and Marah may come upon our lives. It is because an amazing miracle will unfold when we throw the cross of the Lord at the source of all diseases, at our children, businesses, workplaces, and households.

수르 광야와 마라를 만난 인생들
출 15:22-26

이 땅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짐을 짊어지게 되는데, 이 짐은 가볍고 무겁고 간에 귀찮은 존재입니다. 답답하며 괴롭고, 숨이 차고, 원망하다 보면 자기 신세 한탄과 함께 자살의 길까지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시며, 무거운 짐에 눌려 고생하는 우리를 초청해 주셨습니다. 수르 광야와 마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힘겹게 살아가는 인생들의 현주소를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짐을 짊어지고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짐을 덜어 주시는 주님께로 나아가는 축복된 역사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1. ‘수르’의 황량함과 ‘마라’의 쓴 고통의 소리
히브리어로 ‘수르’라는 말은 ‘단단한 바위’를 뜻하고, ‘마라’는 ‘쓰다, 괴롭다’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후 수르 광야에서 마라의 쓴 물을 만났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인생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광야와 마라의 쓴 물로 예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수르 광야는 사막으로, 먼지만 날리는 곳입니다. 태양을 피할 그늘 하나 없는 뜨거운 곳입니다. 마라는 쓰고 괴로운 인생 현실을 뜻합니다. 질병을 만난 분들은 질병의 고통으로 쓰고 괴로운 신음 소리를 내게 됩니다. 물질이 있다가 없게 되면 그것도 괴로운 것이며 쓴 고통입니다. 사회에서 열심히 생활하였지만, 한창 일할 나이에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도, 학생이 열심히 공부하였지만 원하는 진로를 가지 못하는 것도 수르 같은 광야의 고통이요, 마라의 쓴 물입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도 수르 광야이고 마라입니다. 지위가 높고 권세가 있다 해도 사실 얻고 보면 마라의 쓴 물인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넌 후 수르 광야에 도착했지만 3일 동안을 헤매도 물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겨우 마라에 도착해서 물을 얻었는데, 도저히 마실 수 없는 쓴 물을 얻었던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홍해의 감격과 은총도 잠시뿐,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하며, 자기들의 쓴 고통을 인해 불평하는 불신자의 모습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에 수르와 마라의 위기가 닥쳤을 때 취해야 할 참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수르와 마라의 쓴 고통을 피할 수는 없지만, 모세처럼 기도할 때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마라의 쓴 물로 인해 기도하는 모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셨습니다. 문제해결의 도구를 주신 것입니다. 모세가 이 나무를 물에 던지니 ‘쓴 물’이 ‘단물’로 바뀌게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이 시간 수르와 마라로 인해 부르짖는 우리에게 주님의 십자가 나무를 주셔서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의 마라의 현장에 이 은총의 나무, 문제해결의 나무가 던져지는 역사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2. 인생의 ‘수르’와 ‘마라’의 고통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마라의 쓴 물을 달게 하신 하나님께서 결론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질병, 우리의 문제, 즉 수르와 마라의 고통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 가도 만족과 기쁨,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없지만, 세상 어떠한 곳에 살지라도 치료하시는 하나님만 믿고 의지한다면, 그곳은 단물이 샘솟아 나는 새로운 마라요, 푸른 초장으로 바뀐 하나님의 동산 수르가 되는 것입니다.
엘리사 선지자 때 여리고성에 흐르는 물이 좋지 않아, 농사를 지어도 열매가 익기 전에 떨어지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때 엘리사 선지자가 소금을 가져다가 물 근원에 던질 때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까?(왕하 2:19-22) 이 소금도 깨닫고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썩은 세상을 방지하는 참된 소금의 역할을 한 분이 누굽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닙니까? 악취가 나고 부패한 인생들을 우리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마라의 쓴 물과 같이 결실치 못하는 우리의 삶의 중심에 그리스도의 소금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왕하 2:21)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은 맹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이적을 행하시면서 예수님은 특별한 주문을 외우거나 행동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빈 항아리에 물을 붓게 하시고, 그것을 떠서 갖다 주라고 명하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맹물이 포도주가 될 수 있었습니까? 바로 하인들의 순종입니다. 예수님의 모친이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 명했을 때, 그들은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수르와 마라의 쓴 고통을 만난 분들은 자신의 빈 항아리에 주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묵묵히 순종하여 물을 채우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 몸에 어떤 질병이 찾아왔다 할지라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십자가 나무를 던지고, 소금을 던질 때 쓴 물이 단 물로 바뀌고, 수르 광야가 기쁨과 즐거움과 환희가 넘치는 가나안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셨습니다(마 8:17). 그러므로 비록 우리의 삶에 수르와 마라의 고통이 임할지라도 우리에겐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모든 질병의 근원에 던지고, 우리의 자녀와 사업, 직장과 가정에 던질 때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